오늘날의 계급적 학생운동,

그 새로운 전진을 위하여

[ 현시기 계급적 학생운동의 임무와 과제 ]



2003. 9 노학연대 실천단



0. 들어가며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확대는 학원 내에서 과거 운동의 분화와 해체를 낳고 있다. 80년대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의 후예인 (좌파) 민중주의 학생운동은 현재 해체와 질서재편으로 치닫고 있다. <대장정>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3년 노무현 정권의 출범 속에서 나날이 우경화되고 반정부성을 상실하고 있는 한총련과 불안정한 동거에 들어갔다. <전학협>과 <전학대협>은 얼마 전 해소를 선언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타 부위와의 연합 혹은 해소의 변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대중운동 기반의 유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중 속으로”를 외쳤지만 오히려 대중기반의 유실이라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확대에 따른 민주주의 전선의 소멸은 전선을 노/자 계급적대의 전선으로 대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계급역관계에 따라서 보다 뚜렷하게 계급적?정치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주의 학생운동 진영은 표면적인 학생사회의 다원주의화만을 바라보며 이러한 학생사회의 정치적 그룹화를 무시한 채, “전체” 학생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내린 처방전은 학생대중의 다양한 구미를 맞추기 위하여 각종 부문위원회를 건설하고 연대활동이 아닌 학내 사안으로 활동의 중심을 이전하는 것, 그리고 농활과 대동제 등 학생회 사이클을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 이후 전사회적인 계급역관계가 부르조아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학원 역시 이를 반영하듯 나날이 보수화?반동화 되고 있으며 학생운동의 기간 대중적 기반으로 존재했던 학생회와 동아리, 학회 등은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학생운동의 퇴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인 필요한가? 그것은 정치적으로 그룹화하고 있는 학생사회를 마치 하나의 단일한 집단인 것인 양 바라보는 사고와 전체 학생의 이해라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계급적대의 전선을 학원 안으로 도입하는 것, 그래서 “학생들의 다양한 이해에 기반한 운동”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에 입각한 운동을 조직하는 것에 있다. 우리가 이러한 운동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전체 사회주의 운동이 계급적 학생 활동가들에게 부여한 임무와 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계급적 학생운동의 현재 상태 - 대중운동 기반의 유실과 경제주의적 편향


  현재 계급적 학생운동의 상황은 더 이상 떨어질 데도 없다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전반적인 학생운동의 동반몰락 속에서 가뜩이나 대중적 지반이 취약했던 계급적 학생 운동은 활동 주체들마저 유실되면서 고사(枯死) 직전에 놓여 있다. 이는 <노학연대 실천단>뿐만 아니라 학생운동 내에서 어느 정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활동을 펼치는 부위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하루 이틀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노학연대와 점조직적인 학습을 통한 조직화라는 계급적 학생운동의 수공업적인 활동방식은 운동의 변화된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낡은 방식이었다. 그래서 구조조정분쇄 투쟁이 하강기를 그리던 2001년 하반기, <노학연대 실천단> 내부에서는 대중기반의 유실로 인한 위기의식으로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학연대로만 제한되어 있는 계급적 학생운동의 협소한 활동방식을 벗어나 학원투쟁에의 개입을 통한 대중운동의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본과 재단의 학원 통제가 자본의 전사회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임을 인식하고 ‘자본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노동자계급과 연대해야할 실천적 필요성의 획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선전선동과 투쟁의 방향을 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바로 학원투쟁과 계급적 노학연대의 매개고리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2001년 공동투쟁단 反轉 교양대회 자료집 中, 「현 시기 학원정세와 학원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 강조는 인용자)


  일단 대학구조조정을 전사회적인 구조조정의 일부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투쟁을 학원 내에서 광범위하게 조직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학원 내에서 발생하는 자본의 공격에 대응하는 투쟁의 성격과 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이다. 학원 내에서 자본의 공격에 맞선 투쟁은 그 자체로 계급투쟁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연대해야 할 실천적 필요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비록 그 내용이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를 위한 “선전선동과 투쟁의 방향을 배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선전선동과 투쟁의 방향”이라는 것은 “계급적 노학연대의 매개고리”로서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대중에 대한 선험적 판단은 스스로의 활동을 제약하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중이 투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조직하고자 하는 주체가 대중의 불만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쟁은 대중의 불만으로부터 터져 나오며, 그 불만을 일관된 방향으로 모아내는 것이 계급적 학생투사의 역할이다. 문제는 학원에서 일상적인 대적 투쟁의 전선을 규명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즉 자본의 대학 통제 방침으로 인한 학생들의 불만과 저항의지는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단지 그것을 정확히 포착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활동가들이 수행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즉 학생회의 형식을 변화시키는 문제 이전에 학원에서 대중의 불만과 투쟁을 조직하고 대자본 투쟁으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지도적 방안을 형성하는 것본질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투쟁하는 학생회 건설”은 3파 한총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대중운동관, 대중투쟁노선을 함축하는 것이다. 학생회라는 체계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또한 투쟁에 동참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리와 자치를 쟁취할 것을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다.“(같은 글)

 

“노동계급적 성향을 지닌 부위는 학원 내에 단 1%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중운동의 조직을 방기해야 하는가?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핵심은, 학원이 반동화되는 과정에서 운동성 자체가 급속도로 거세되는 현재적 상태는, 이를 방어하고 분쇄하기 위한 돌파구가 유일하게 학원 내 대중투쟁의 흐름을 복구시키는 것임을 계급적 학생운동에게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운동의 복원.”(反轉 소식지 1호 中 「학원투쟁과 계급적 노학연대 그 통일적 구현을 위하여」, 강조는 인용자)


  이제 학원에서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학생 사회주의자에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다. 게다가 학원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대중투쟁의 흐름을 복구시키는” 것이며 이는 “학원이 반동화되는” 것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을 해왔던 동지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전선이 해체되면서 나타난 학생운동의 위기를 계급역관계의 변화 속에서 바라본 것이 아닌 대중운동의 위기 그 자체로만 바라보았던 민중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논리였다.


“대학인의 삶에 기반한 운동이 필요하며, 그것은 취업과 교육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실현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대학인들의 삶의 욕구와 지향이 지금은 (비록 외부로부터 강제된 조건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취업이라는 것으로 일정 통일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를 중심으로 대학인의 삶의 맥락이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대학인의 삶에 근거한 대중운동의 구현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노동권과 교육권에 입각한 운동, 노동과 교육의 권리실현을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中 , 대장정 「학생운동 그 우울한 자화상을 넘어서기」)


  위의 민중주의자들의 주장은 우리의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다만 민중주의자들이 “좌파”, “학대중의 좌익화”, “학생운동의 선도성”, “대중의 급진화”를 운운하며 학원 내에서의 투쟁조차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상층 중심의 소부르조아 정치투쟁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한 반면 우리는 “계급적”이라는 수식어 속에서 학원주의자들의 전투적 분파로 전락한 것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학원에서 발생하는 제 사안과 관련된 투쟁에서 전투파로 존재하는 것에 그치는 것, 그것으로 대중운동을 형성하는 것을 모든 것으로 사고하는 것, 그것은 명백하게 학원주의로의 이탈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계급의식적 청년학생은 학생대중의 이익으로부터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이익으로부터 자신의 운동을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 시기 학원 내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학원은 전체 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 그 일부이므로 사회적인 계급 역관계가 학원 내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학생들의 정치적?의식적 분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부르조아지에게 매우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학생운동의 위기는 부르조아지의 압도적 우위라는 전사회적인 계급역관계가 반영된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니다. 따라서 요구되는 것은 학원투쟁의 전술주체로 자신을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노학연대를 자신의 활동의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이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내용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형성하는 것이다.


*  *  *  *  *


  우리에게 나타났던 학원주의적 경향은 이제 일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우리 내부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계급적 학생운동 진영 내에서 학원주의라는 경제주의적(민중주의적) 경향은 완전히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13주년 메이데이에 배포된 <전조>의 신문 6호는 분명하게도 <노학연대 실천단>이 1년 반 전에 걸어갔던 오류인 학원주의의 재판(再版)이고 민중주의로의 후퇴이다. 운동의 몰락에 대한 위기의식과 등록금투쟁에 대한 경제주의적 사고가 결합하여 파산한 노선과 이론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학원에서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 사회주의 정치로 운동을 조직한다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는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학생들의 소부르조아적 심리와 이해에 굴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 전반에 생디칼리즘 경향이 만연하는 것의 영향으로 학생들을 단순히 노동자 투쟁의 지지부대 혹은 전술 보족단위 정도로만 제한하는 경향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은 “아래로부터”라는 상투적인 구호에 입각해서 계급적 학생운동을 학원개혁 투쟁의 전투파 혹은 전투적 조합주의의 추종세력으로 하락시키고 있다


1) 계급적 학생운동 내의 경제주의적 경향 (1) - 학원주의 비판


“민중주의자들이 부르주아적 학생그룹의 비판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민중주의자들은 타협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과 빈민, 가난한 학생들의 이해를 생각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민중주의자들의 물질적 기반인 학생회에 당선되기 위해서이다. 범학생의 이해라는 공상적 모델에 입각하여 선거운동을 벌이는 민중주의자들은 학생 내의 정치 의식적 분화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전조> 6호, 「민중주의 학생운동진영의 정치일정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과 빈민, 가난한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 투쟁할 것인가?」, 강조는 인용자)


  <전조>의 “가난한 학생들의 이해”는 어떻게 “노동자계급과 빈민”의 이해와 같은가?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빈민”의 이해는 어떻게 일치하는가? 만약 <전조>의 이야기대로 한다면 사회주의자들과 민중주의자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민중주의자들 역시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말로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천적으로, 그리고 강령적으로는 노동계급의 독자성을 부인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독자성을 주장하면 이는 노동자주의라고 호도한다. 그런데 민중주의자들을 그토록 비판하는 <전조>가 “타협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과 빈민, 가난한 학생들의 이해”를 주장하다니! 이러한 <전조>가 민중주의자들과 차별성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단지 비타협성뿐이다.


“민중주의자들의 대정부 투쟁은 학생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의 적인 학교본부와 투쟁을 회피한 투쟁이듯이, 노동자계급의 현장에서의 적인 고용주들과의 투쟁을 회피한 투쟁이다.”(<전조> 6호, 「민중주의 학생운동의 실패한 노선을 반복할 것인가?」)


“현장의 투쟁을 경제투쟁이라 폄하하고 오로지 의회정치 영역의 투쟁만이 상위의 고차원적인 의식적인 정치투쟁이라고 주장한 사회영역의 개량주의자들의 출신지가 대학의 민중주의 학생운동진영인 것이다. 이것은 학습노동의 현장, 자본의 이윤증식을 위한 착취의 노동의 현장에서 가난한 학생들과 노동자계급이 권력주체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같은 글)


  이제 학생들이 ”학교본부와 투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고용주들과의 투쟁“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공장을 노동자에게, 토지를 농민에게, 학교를 학생에게“라는 아지테이션으로 시작하는 ”민중권력쟁취가“를 부르면 된다. <전조>는 아마도 “가난한 학생들”과 “노동자계급”을 단일한 “권력주체”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이러한 <전조>의 주장은 21세기의 새로운 계급동맹 전술인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소부르조아지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에서 계급동맹을 형성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권력은 단일한 계급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계급동맹에 참여하는 소부르조아지는 자신의 소소유자로서의 본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미래, 즉 노동계급의 대의를 동의하는 한에서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조>는 우선 “가난한 학생들”이 왜 노동계급의 동맹자가 될 수 있는지 밝히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이라는 애매한 규정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의 건설에 동의하는 계급의식적 학생들(을 포함한 인민들)만이 미래의 “권력주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왜 <전조>는 이렇게 자신의 정치를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고 있는 민중주의로 타락시키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들이 학생사회의 정치의식적 그룹화를 지극히 경제결정론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전조 역시 학생들의 정치의식적 분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조>에게 학생들의 정치의식적 그룹화의 요인은 사회 제 계급의 역관계와 정치그룹화의 발전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의 경제적 조건이다. 즉 이들이 이야기하는 “가난한 학생들”은 학원 내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의식적으로 주장하고 이를 위해 실천하는 학생들이 아닌 “무산계급과 혈연관계를 맺게 된” 존재들이다. 즉 노동자의 자녀들인 “가난한 학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은 곧 학원 내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학생의 존재조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생은 생산관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은 이상 하나의 계급으로 규정할 수 없다. 학생은 자신의 세계관과 미래에 자신이 편입될 계급을 결정하고자 하는 과도기적 존재이지 하나의 계급은 아니다. 따라서 학생의 계급적 분화를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노동자의 자녀인지, 자본가의 자녀인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제 계급 가운데 누구의 이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인가 이다. 그렇지 않고 학생의 계급적 이해를 말한다면 그것은 졸업 이후 생산관계에 편입되었을 때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보다 비싸게 팔려고 하는 소부르조아적 이해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조>의 주장인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은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학생들을 단일한 이해로 묶고자 했던 민중주의자들의 파산한 이론과 노선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민중주의자들이 모든 학생들의 이익을 추구했다면 <전조>는 일부의 학생, “가난한 학생”들을 선택한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이라고 단일한 이해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학생”들은 출세를 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 사회에 나가서 평범한 노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자영업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극소수의 사람들 등등으로 다양하게 나뉘게 된다.1)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자여, 당신들의 투쟁은 우리들의 투쟁이다........

  대학에서 노동자 출신은 10%(남한은 83년 현재 8%)이다. 우리는 그 이상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나, 교육의 민주적 개혁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적 개혁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의 자녀가 다른 자녀들과 같이 학생이 되는 것이나, 그들이 부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노동자와 관리자 혹은 감독자의 구별을 없애고 싶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 그들에게도 직장을 갖게 하도록 우리들이 투쟁하고 있는 것인가, 대학 졸업생의 좋은 고용조건을 위해서인가. 아니다. 심리학과 사회학과의 졸업생은 인사선발계 심리조사요원, 직업지도원 등으로 되어 당신들의 노동조건을 왜곡하면서 조정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수학과 졸업생은 기사가 되어 보다 생산적이긴 하지만 당신들에게는 더욱 참기 어려운 기계를 제작해 낼 것이다.

  우리 특권계층 출신 학생이 왜 현재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노동자의 자녀들이 학생이 되는 것은 자신의 계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이고, 상승의 기회가 되며, 새로운 경쟁자가 된다. 부르조아의 자녀들이 자신의 계층이 갖고 있는 참된 성격을 파악하고 자기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는 사회기능, 사회의 조직, 자기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은 사회의 현실에서 유리된 박학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지도계층의 이익을 위해 몰가치적으로 이용되는 것 또한 거부한다........

  당신들의 투쟁과 우리들의 투쟁은 동일한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다. 쌍방을 고립시키려는 어떠한 기도도 우리는 함께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 68 학생 반란 당시 뿌려졌던 유인물 中에서)


2) 계급적 학생운동 내의 경제주의적 편향 (2) - 노동자주의 비판2)


  계급적 학생운동 내의 경제주의적 편향은 비단 학원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계급적 학생운동의 중심적인 활동방식인 노학연대에서도 경제주의적 편향은 나타나고 있다. 즉 학생 활동가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로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노동자 투쟁의 지지자 혹은 전술 보족단위로만 머무는 경향 역시 우리 운동 내에 존재한다. 학원파적 경향이 학생들의 정치의식적 분화에 대한 경제결정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나타났다면 “노동자주의”적 경향은 지난 시기 남한 사회주의 운동을 지배해온 전투적 현장주의에 대한 찬양과 깊은 관계가 있다. 즉 97년 노개투와 98년과 99년 구조조정 투쟁 속에서 현장의 요구를 관료적으로 묵살하고 사회개혁 투쟁 중심으로 나아갔던 노동운동 상층운동 지도부에 행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전투파 운동의 “반(反)관료-현장중심”이라는 노선을 통해 각인되어 온 “현장으로부터”라는 정당한 구호가 이제는 관성이 되어 “노동자주의”적 경향 안에는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곳에서 현장투쟁의 기본들을 형성하고 저지선을 설치하며, 나아가 더욱 급진적인 요구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확장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구조조정 저지의 내용이다. 이러한 투쟁의 방향은 대공장 사업장이든 중소?영세 사업장에든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구조조정 저지! 현장권력 강화! 진보정당 반대!”의 슬로는 현 시기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2002 학생투쟁위원회 斷> 소식지 2호, 강조는 인용자)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이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다. 그리고 민중주의 학생운동이 단순히 노동운동 상층부의 개량주의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사수대 역할 이상을 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학생 사회주의자들이 현장과 밀착하는 활동 방식을 추구해야 함의 중요성을 부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고민의 핵심은 계급적 청년학생들이 어떻게 현 시기 노동자 투쟁의 지지자를 넘어서서 투쟁의 요소요소에 계급투쟁의 정신을 불어 넣을 것인가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단순히 현장에 밀착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자기 현장의 사안을 뛰어넘어 노동자들이 전체 계급의 투쟁을 고민할 수 있도록 청년학생들의 선전?선동은 조직되어야 한다.3)

  

“계급 내 분할의식을 넘어서기 위한 전국적 정치선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현재 구체적인 계급의 상태, 조건, 그리고 전반적인 정세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며…”(같은 글)


  현 시기 분절화는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대공장 내에서 정규직과 하청, 심지어 같은 하청 내에서도 1차와 2차, 2차와 3차 사이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계급 내의 분절화가 가능한 것은 자본의 분할통제와 함께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가지고 있는 협소한 조합주의 질서이다. 이를 뛰어넘는 것은 단순히 자기 현장의 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분절화의 극복은 전계급적인 이익에 기반하여 당장의 자기의 이익이 아니더라도 투쟁할 때에만 가능하며 이는 매우 높은 의식성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한다.4) 이러한 의식성은 단지 “현장투쟁의 강화”로부터만 획득되는 것은 아니며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다양한 억압과 모순에 맞서는 투쟁으로 노동자들이 정치적?의식적으로 훈련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 계급적 청년들은 학생운동 특유의 의식성과 기동성을 가지고 그러한 정치적 폭로와 정치선동을 운동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 내부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안고 가야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가 형성되고 있다. 물론 이는 다양한 의식의 분포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어떤 사람들은 좀 더 계급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전과 달리 거부감이나 무관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의 차이는 다양한 투쟁계획과 내부적인 교육, 선전, 등의 주체적인 계획을 통해서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다.”(울산순회투쟁단 <비정규직철폐> 자료집, 강조는 인용자)


  사회주의자라고 한다면 단순히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식의 분포가 존재”를 거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가운데에서 선진적인 흐름을 포착해내고 이 흐름을 확대하고 의식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현재 남한 노동운동의 고착화된 조합주의 질서 속에서 단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주체적인 계획”만으로 의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환상이며 평론가적인 태도이다. 이러한 “노동자주의자”들의 태도는 실천적으로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서 정규직 노조와 활동가들의 형식적인 공동투쟁을 찬양하는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1공장 비투위의 종파적이고 대기주의적인 행태에 대하여 계급성을 덧씌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5)

  그럼, 도대체 무엇이 “노동자주의”적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는가? 노동자 투쟁에 결합해서 이 투쟁을 전투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급의식적 청년학생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전진을 위해 어떠한 과제를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즉 정치선동의 내용과 성격을 풍부히 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선전주의적인 활동으로 치부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현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발발하는 노동자투쟁에 결합해서 현장투쟁의 강화를 외치는 것, 그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직 현장으로부터’, ‘아래로부터’만이 최고의 것으로, 반드시 현장로부터만 출발해야 하고 그것만이 전부인양 사고하는 경향이 오히려 우리 운동의 정치적 내용과 수준을 하락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최근의 계급적 학생운동이 수행하고 있는 노학연대 투쟁의 상황을 보라. 구조조정 정세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대중투쟁이 퇴조하면서 계급적 학생운동 부위의 결합의 폭이 줄어듦과 함께 정치적 내용 역시 하락하고 있다. 현장과 밀착하는 것을 활동방식의 하나로 가져가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활동에 정치적인 내용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할 때에만 계급의식적 학생운동은 전투적 조합주의의 지지자를 뛰어넘어서 계급운동의 사회주의적 발전에 복무할 수 있을 것이다.


2. 현 시기 계급의식적 청년학생의 임무와 과제


  이상에서 계급적 학생운동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학생운동의 해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사회주의 운동의 전진을 위하여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전제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 사회주의자들이 전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와 다른 것을 부여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로서 전체 사회주의 운동의 임무를 자신의 임무로 부여받는다. 지금의 계급운동의 당면 과제는 지리멸렬한 써클적 시기를 종료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 건설 투쟁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 건설 운동의 주체이자 부대로서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 운동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학생들은 단순히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의 임무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야 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한 주체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년학생들이 전체 운동과 같은 임무를 부여받는다는 것이 학생들이 사회주의 운동 일반의 임무를 그대로 암송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학생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해 나가는 청년기라는 특수성을 십분 발휘하여, 그리고 학원이라는 자신의 조건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운동을 조직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신의 과제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부터 계급적 학생운동은 단순히 노동자 투쟁의 전투적인 지지부대 혹은 학원개혁 운동의 비타협적인 분파가 아닌 사회주의 운동의 가장 젊고 열정에 가득 찬, 그리고 가장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부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1)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운동의 창출에 복무하자!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 분쇄 투쟁을 경과하면서 90년대 중반 형성되었던 전투적 선진노동자운동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다. 선진노동자들의 (전투적) 조합주의 정치의 한계는 자본의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 전화시키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생존권 사수투쟁과 노조관료 및 소부르조아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투쟁으로 제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운동 내의 경제주의적 경향은 선진노동자들을 사회주의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선진노동자들의 자리를 대체하도록 만들었으며 급기야 사회주의자들의 정치를 생디칼리즘으로 하락시켰다.

  다시 다가올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전망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현재의 노동조합주의적인 운동-그것이 아무리 전투적으로 벌어진다고 하더라도-의 자체적인 발전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조합주의 질서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자기 사업장, 자기 노동조합 질서 내에서의 부분적인 개선에만 집착하도록 만들고 있다. 현 시기 자본의 공세가 정규직 고용과 조직된 노동운동의 해체를 겨냥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선 투쟁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은 단지 노조관료들의 수세적인 방어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 정치의식과 실리주의적인 정서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어 노동자들이 혁명적인 계급의식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리고 민중들의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선진노동자들에게는 전투적 현장주의를 뛰어넘는 의식적인 실천이,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사회주의 정치선동과 정치활동의 강화가 요구된다.

  계급적 청년학생들은 이러한 계급운동의 상황으로부터 노학연대 활동에 있어서 생존권 사수투쟁을 뛰어넘는 사회주의 정치선동의 성격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 정치선동을 수행하는 부대를 모집하고 이 활동이 선진노동자 운동의 재편에 복무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자본의 유연화 공세가 조직된 노동자 운동을 해체하고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가속화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 그리고 실리주의적?조합주의적 정서가 이를 투쟁으로 맞받아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현장투쟁에서의 전투성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학생들은 선진노동자들이 자기 사업장 노동자들의 이해를 뛰어넘어서 전(全)계급적인 이해를 가지고 투쟁해야 함을, 그리고 이로부터 전투적 현장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운동의 질서를 형성해야 함을 정치선동함으로서 현 시기 전체 운동이 부여하는 과제에 복무해야 한다.

  전국적인 선진노동자 운동이 붕괴하고, 사회주의 운동이 써클적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정치선동을 수행할 수 있는 부위는 정세적 민감성과 특유의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운동 부위뿐이다. 계급의식적 학생운동의 활동은 단순히 전투적 조합주의 운동의 학생지지그룹으로 자리 잡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학연대는 노동자와 학생사회주의자들의 연대활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생 운동가들은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수준으로부터 정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를 현장으로 도입하기 위한 시도를 다각적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6) 청년학생들은 전체 운동이 부여하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학생운동 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노동자 투쟁과 결합시키기 위하여 분투해야 한다.

 

2) 사회주의 정치선동과 정치활동을 강화하자!


  앞서 현 시기 사회주의 운동 일각의 생디칼리즘으로의 후퇴와 그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계급적 학생운동의 경제주의적 경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구조조정 분쇄 투쟁에 결합하면서 나타난 실천을 강조하는 경향이 관성적으로 굳어서 계급적 학생운동의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계급적 학생활동가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더욱 더 단련하고 활동 전반에서 사회주의적 정치선동과 정치활동의 성격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계급 운동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이 생디칼리즘에 대한 투쟁을 자신의 과제로 가져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 사회주의자들 역시 우리 운동 내에 존재하는 학원파적 경향과 노동자주의적 경향에 맞서서 투쟁을 펼쳐 나가야 한다.

  현재 학원 내에서 운동전반의 몰락으로부터 학생 사회주의자들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운동의 재생산 메커니즘은 파괴되어 있으며 활동가들은 전반적으로 대중운동을 형성하기보다는 자족적인 노학연대 사업 혹은 학습 소모임 등에 만족하고 있다. 학생회를 통한 인자 재생산과 노학연대를 통한 인자 단련, 그리고 학습을 통한 활동가로서의 성장이라는―그것이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그 동안의 운동 메커니즘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학원 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경향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소규모적인 활동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들 전반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지도내용은 대단히 부족하며, 설령 존재하더라도 그것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운동이 학원주의와 노동자주의라는 경제주의적 경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의 해결방향은 학원주의와 노동자주의로 정치를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활동의 관성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된 운동의 상황과 조건에 적합하게 실천 활동의 방향을 재확립하고 활동방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 즉, 발발하는 노동자 투쟁을 쫓아다니거나 학원투쟁의 전투파로 자리 잡는 것에 자신의 역량 대부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지도의 내용을 확보하고 심화시키기 위한 활동에 자신의 역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를 통해 대중투쟁의 전술적 지침에만 제한되지 않고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내용을 심화,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학원주의와 부문주의로의 이탈을 최대한 막아내면서 노동자 투쟁에 직접적인 결합에 한정되지 않는 활동방식과 메커니즘의 개발을 통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학원 내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도록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계급적 학생운동은 활동 전반에서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강화하고 실천적으로는 노동계급의 투쟁에 연대하여 그 투쟁에 진실로 혁명적인 계급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을 활동의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학원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개입하고 이를 계기로 학생대중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의식화시키기 위하여 분투해야 한다.7)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정치?경제적 제 사안들에 대해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폭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계급적 의식으로 조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계급적 학생 활동가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학원에서 나타나는 자치적인 운동을 민중주의자들의 소부르조아 정치나 지배계급의 부르조아 정치의 부속물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에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8)

  이러한 계급적 청년학생의 활동은 전체 운동이 요구하는 바, 정치선동의 성격을 사회주의적으로 강화하는데 기여함과 동시에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계급운동을 자신의 전망으로 가져갈 사회주의자들을 육성, 배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협소한 노동조합 투쟁에 대한 지지 세력으로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는 계급의식적 학생운동가의 임무가 아니다. 그러한 활동만으로는 사회주의자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노동조합운동의 실무자를 양성할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민의 호민관이 되어야 하며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들어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억압에 대한 지식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달해야 한다.9) 이에 발맞추어 학생 활동가들은 정치활동 전반에서 사회주의 정치선동의 폭을 확장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실천과 결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